교수님들께 드리는 글
대학의 위기는 이제 현실입니다. 전국의 96개 대학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위해 입학정원을 또 감축하기로 했습니다. 내부의 진통이 뒤따르는 학내 구조조정도 불가피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모집이 어려운 학과는 폐지하거나 통합하고 유망한 학과를 도입하는 방식이 대세입니다. 생존이 어려운 대학 간엔 통합도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소멸하는 대학이 늘면서 결국 살아남는 대학이 강한 대학이 됩니다.
비교우위가 없이는 생존·발전이 불가능한 기업의 경영방식을 이젠 대학이 배워야 하는 시대입니다. 경영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게 경영입니다. “아무리 강하게 보이는 기업도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무너진다.”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말하는 경영론의 정수(精髓)입니다.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그의 대답은 간결합니다.
“기업의 유일한 목적은 고객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선 마케팅과 혁신, 이 두 가지 기능이 전부다.(The purpose of a business is to create and keep customers. Business has only two basic functions - marketing and innovation!)”
교육은 공공의 서비스이지만, 각자도생을 위해 공급자들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교육이라는 서비스상품이 고객의 선택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 잘 나가던 코닥, 노키아, 모토로라, 야후.. 글로벌 최강자들이 한순간에 사라진 이유도 경영의 기본과 원칙에 소홀했던 탓입니다. 환경은 빠르게 변하는데 고객의 ‘니즈’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겁니다.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닙니다. 우리 학교 얘기입니다. 지난 15일 전국대학의 계열별 평가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17605). 적격성을 판단하는 교육부의 인증평가와 달리 중앙일보의 대학평가는 순위를 정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입니다. 작년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이번 결과도 여전히 실망스럽습니다. 연구와 취업 부문만큼은 최상위권에 속했던 KAU의 자긍심이 이대로 가면 과거의 일로 끝나게 됩니다.
이제는 변해야 합니다. 그 변화는 우수한 신입생을 확보하고, 디지털 사회가 원하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전환해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는 일입니다. 낡은 틀을 허무는 이 혁신(革新)에는 가죽을 벗겨내는 고통이 따릅니다. 이를 거부하는 조직은 지금의 지위조차 유지하기 힘듭니다. 지난 5월 개교 70주년을 기념해 밝힌 ‘비전 2025’는 그래서 흔들림 없이 추진되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교수님 여러분!
바야흐로 우리는 항공우주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물 들어왔을 때 배 띄워야 합니다. KAU는 항공우주 분야에서 축적해 온 교육의 경험과 데이터, 업계 최대의 동문 네트워크, 글로벌 항공사 대한항공을 재단으로 두고 있습니다. 풍부한 잠재력을 구현하고 도약할 기회가 바로 지금입니다. 앞으로 늘어날 항공업계의 일자리와 정부의 R&D 예산에 부응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래는 2023학년도 신학기 시작 전까지 마무리해야 할 과제들입니다. 교수 여러분의 이해와 동참을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첫째, 수요자 중심의 커리큘럼 개편입니다. 디지털 전환과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맞는 교과목으로 업데이트하는 일입니다. 대학 간의 학점교류와 온라인 강좌도 확대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학생들의 학습 선택권 확대를 위해 신학기부터 연세대와 성신여대, 서울과기대와 학점교류를 통해 인문·사회 분야 등 내부에서 부족한 수강과목을 대체·확대할 것입니다. 학부(과)별로 현재 교과과정의 적절성을 판단하고, 산업의 진화를 반영한 교과목을 신설하고 현장학습 교과목을 확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과정에서 공급자 중심의 위인설강(爲人設講)이 있다면, 철저히 배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학과 중심의 학사구조 개편입니다. 정부의 권장에 따라 한때 보편화되었던 학부제는 융합의 순기능보다는 역동성이 감소한 대단위 조직의 역기능이 더 크게 드러났습니다. 다른 대학들이 세포분열처럼 마이크로 융합 전공의 ‘아메바조직’으로 탈바꿈하는 동안 KAU를 대표하던 항우기와 항전정 두 학부, 경영학부 등의 역동성은 사라졌습니다. 앞으로 10년, 20년 우리 대학을 이끌어 갈 젊은 교수님들의 역할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내부 소통이 자유로운 교수협의회의 개선안도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셋째, 교수업적 평가방식의 개선입니다. 현재 논문게재실적 중심의 평가방식을 대학 기여도 중심으로 전환하겠습니다. 그동안 SCI 논문에 가려졌던 연구간접비, 취업지도, 동아리 지도 등 비교과과정 참여와 대외 전문가 활동에 대한 지표 등을 폭넓게 추가하여 재임용과 승진, 승호봉 등의 평가에 반영하겠습니다. 단과대학별로 학부(과)의 특성을 반영하여 평가지표의 개선을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까지의 성과만으로 판단한다면, 바깥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동안 우리는 서서히 데워진 가마솥에서 그걸 남의 일로 알고 안주한 셈입니다. 조직의 목표가 개인의 목표와 일치하는지를 생각하고, 삶의 터전을 대학에 둔 직장인으로서 ‘직업윤리’를 이제는 실천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KAU의 소중한 자산이고, 총장은 그 가치를 극대화할 책임을 진 CEO입니다. 진짜 중요한 건 교수가 변해야 대학이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