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는 특별합니다. 게임이론에서 언급되는 ‘매드맨 전략(Madman theory)’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그냥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무슨 행동도 할지 모른다.” 파국을 막기 위해 상대가 스스로 양보하게끔 유도하는 고도의 심리전입니다. 소통조차 통하지 않는 두려움을 국제정치에서 잘 활용하는 그는 그래서 협상의 달인으로 통합니다. 알고 보면, 세상의 모든 거래는 협상입니다. 물건값을 놓고 흥정하거나 계약조건을 논하는 건 일부 사례입니다.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상대방의 요구를 고려하면서 서로의 조건을 조정하는 과정이 모두 협상입니다. 우리는 늘 시간·돈·정보·관심·역할·감정·의견·관계를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협상은 상대방이 원하는 걸 이해하고, 그걸 활용해서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일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엔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거기엔 협상이 있게 마련입니다. 개인의 직관이나 말솜씨 같은 기술(art) 정도를 뜻하던 협상이 경제학이나 정치학, 경영학과 심리학처럼 다양한 학문과 학제적 연구를 통해 ‘협상론(Negotiation theory)’이 등장하고, 독립된 학문으로 ‘협상학’의 영역이 구축된 건 1980년대 전후입니다. 하버드대학의 하워드 라이파(Howard Raiffa) 교수는 게임이론에 인간의 행동 패턴을 반영한 동태적 의사결정 과정이론을 개발해 막연히 처세술 정도에 머물던 협상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당시 이 대학의 협상 프로젝트팀이 1981년 출간한 <Getting to Yes>가 대중화되면서 학문적 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상호 입장의 이면에 숨겨진 이해관계를 집중하는 ‘원칙 있는 협상’의 개념이 정립된 겁니다.
공정한 협상은 어렵습니다. ‘공정’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게 문제입니다. 개인마다 나이와 성별, 교육 수준과 사회경제적 지위, 인종, 문화에 따라 가치관과 기준은 달라집니다. 음식을 주문하면 밑반찬이 공짜라야 공정한 거래로 우리는 생각하지만, 일본에서 그건 공정하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식탁의 물도 값을 받는 게 공정한 거래입니다. ‘공정함’은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되는 말입니다. 누구에게 공정하다는 의미인가? 어떤 기준에서 공정하다는 뜻인가? 협상 테이블에서 ‘공정한’ 자신의 요구를 어필하고 싶다면, 상대방의 입장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협상은 그래서 현실을 바라보는 생각의 틀을 짜는 프레임, 바로 ‘관점(觀點, perspective)의 문제입니다. 나와 상대방이 공정함의 의미에 일치할 가능성이 희박한 건 바로 관점의 차이 때문입니다.
감정싸움이나 소모적인 줄다리기를 피하고, 양측 모두의 만족을 위해 당시 하버드 협상학파 이후에도 전문가들이 수많은 협상론을 내놓았습니다. 최근 풍부한 실증자료를 소개하는 신간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의 모리 타헤리푸어(Mori Taheripour) 교수가 2021년 집필한 책의 원제는 <Bring Yourself>.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차갑고 이성적인 협상론 개념을 뒤집는 책입니다. 저자는 냉혹한 승부사 기질이나 화려한 말솜씨가 아닌, '인간적인 태도'가 오히려 협상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합니다. 15년 넘게 컨설팅 현장, 와튼스쿨 강의실, 골드만삭스 1만 중소기업 프로그램에서 수많은 학생과 기업가를 만나며 심리학적 접근법의 힘을 직접 경험하고 목격하면서 내린 결론을 몇 개의 키워드로 소개합니다.
첫째. 진정성과 자기 인식입니다. 성공적인 협상은 상대방의 분석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가면을 쓰고 냉혹한 협상가인 척할 것 없습니다. 자신의 진짜 가치와 요구, 내면의 욕구를 명확히 알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Bring Yourself’)으로 협상 테이블에 나설 때 비로소 강력한 협상력이 발휘됩니다. 둘째, 연결과 공감입니다. 모든 대화의 본질은 거래가 아닌 연결이기 때문입니다. 협상은 정해진 파이를 나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상대방과 신뢰를 쌓고 관계를 맺는 과정. 상대의 욕구와 감정에 깊이 공감할 때, 서로 만족하는 접점이 쉽게 찾아집니다. 셋째, 호기심과 경청입니다. 훌륭한 협상가는 말을 잘하는 것보다 질문을 잘하고 잘 듣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모든 해법을 안다는 확신을 버리고 상대방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호기심을 가져야 합니다. 열린 태도로 경청하면 대화의 공간이 열리고 더 창의적인 해결책이 찾아집니다. 넷째, 흔히 협상을 뺏고 뺏기는 상충 관계로 인식하지만, 자원과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마인드셋입니다. 피차 도움이 될 방법을 찾다 보면, 파이는 얼마든지 커질 수 있습니다. 끝으로, 취약성의 힘입니다. 전통적인 협상론은 감정이나 약점을 숨기라고 조언하지만, 오히려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강점이 됩니다. 방어적인 태도를 허물고 솔직한 감정과 한계를 인정할 때, 상대방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진심 어린 대화와 문제 해결이 가능해집니다.
훌륭한 협상가는 저돌적이고 냉정해야 한다는 건 흔한 오해 중 하나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협상은 거래가 아닌 상호 교류의 관점에서 봐야 하고,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우선입니다. 외국 여행길에 처음 본 외국인이 유창한 한국어로 친근하게 다가온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느낌을 받습니까. 이해관계가 걸린 협상에서는 현란한 언어의 구사, 세련된 대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향적이고 소심하고 솔직한 사람이 때로는 상대의 신뢰를 얻는 데는 유리합니다. 그래서 당장의 설득보다는 나와 상대방이 문제 해결의 파트너로 인식하는 게 먼저입니다. 세일즈맨들이 빨리 계약하지 않으면 안 될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상대의 폭풍 같은 '미치광이 전략'에도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고 나만의 중심을 지킨다면, 주도권은 내 쪽에 있습니다. 불리해지는 건 늘 조급한 쪽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