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원 시절 어느 강의에 대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수업 시간 내내 교수는 교재 없이 계량모형의 증명 과정으로 칠판을 메워나갔고 학생들은 그걸 노트에 옮겨적었습니다. 학기 내내 수업은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 중 한 분이었던 그 교수님의 수업은 그래서 늘 조용하고 적막했으며 노트에 적은 게 전부였습니다. 당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나에게 그분의 지력만큼은 놀라웠습니다. 발표와 토론, Q&A를 활용한 수업들도 있었지만, 교수는 칠판에 적고 학생이 그걸 받아적는 수업이 그 시절엔 꽤 많았습니다. 지식의 접근이 제한적이던 1980년대 아날로그 시대의 얘기입니다.
# ‘뉴럴링크’가 요즘 주목받고 있습니다. 향후 인간을 위협할 AI에 밀리지 않는 지능 개발을 목적으로 2016년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이 회사는 신경세포 뉴런의 파괴 없이 두개골에 초소형 전극과 칩을 이식하는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2020년 8월에는 돼지의 뇌에 칩을 심는 과정을 중계했고바로가기, 올 4월에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칩을 이식받은 환자가 로봇팔과 드론 등 물리적 기기의 제어 과정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바로가기. AI가 전기적인 파장을 수집해 이를 칩이 처리 가능한 형태의 디지털로 변환해 두뇌에 이식하게 되면, 인간의 지능을 증강하고 생각을 제어하는 시대는 현실이 됩니다.
지금 우리는 ‘기존 지식과 학습의 종말’을 보는 듯한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교수나 학생 모두 AI 활용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지금 엄청난 변화는 교육자보다 학습자들에게 더 많은 유익을 제공되는 듯합니다. 학생에겐 ‘AI를 활용한 보고서 작성하기’로 학습량이 크게 줄어든 반면, 교수는 강의 준비로 바빠졌습니다. 물론 여기엔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보람도 있지만, 늘어나는 학습 모듈을 점검하는 노력이 뒤따릅니다. 강의의 패러다임 전환이 예견되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아무리 많은 AI 학습 요령이 제공되더라도 기본 원리와 통찰, 그리고 즉흥적인 스토리텔링과 같은 인간적인 요소는 AI가 대신하지 못합니다. AI는 학습의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지만, 진정한 학습의 영감은 인간 교육자와의 통찰의 공유와 상호작용에서 비롯됩니다. 교육의 본질은 인간 대 인간의 상호작용,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도전과 자극이 핵심입니다. 각자 온라인 학습 후 대면이 이루어지는 교육 현장에서 교수의 가르침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면 교수나 학생이 강의나 발표를 잘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AI 환경에서도 시대를 초월한 소통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최고의 강의에 대해 흔히 전문가들은 ‘지경통’과 전달 스킬, 진정성 가득한 열정 등 세 가지 조건을 말합니다. 여기서 ‘지경통’은 지식(knowledge), 경험(experience), 통찰(insight)을 합친 말. 한마디로 강의의 콘텐츠입니다. 똑같은 콘텐츠라면, 강의력의 차이는 전달 스킬과 교수자의 열정으로 결정됩니다. 일반 청중들은 교수자의 열정으로 똘똘 뭉친 진정 어린 눈빛과 태도에 먼저 감동합니다. 좋은 강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기본입니다.
영상화된 디지털 집필로 아무리 콘텐츠가 출중해도 전달하는 스킬이 떨어지면 청중의 집중력과 이해도는 떨어집니다. 같은 주제로 전공 교수가 화자 중심의 강의를 하는 동안 프로 강사가 방송에서 청중의 인기를 끄는 건 그 스킬의 차이입니다. 특강으로 각광받는 프로일수록 ①콘텐츠의 구성, ②명료한 스피치 스킬, ③현장감을 살린 리허설 스킬에 집중합니다. 콘텐츠 구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주제를 역동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스토리텔링 능력이고, 명료한 강의는 강조할 포인트에 적절한 스피드와 높낮이, 억양의 변화로 청중의 주의를 시종일관 꽉 붙들어 매는 게 핵심입니다. ①, ②를 더 빛나게 하는 건 현장감을 살린 리허설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많은 사람이 의외로 ③단계를 대충대충 한다는 점입니다. 스티브 잡스처럼 강의나 발표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현장감을 살린 리허설에 공을 들입니다. AI 시대에도 성공적인 강의는 교수자의 열정이 담긴 소통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교육생들은 가장 피하고 싶은 교수자 중의 하나로 열정이 부족한 사람을 꼽습니다. 청중의 변화를 이끄는 열정은 그 자체로 전염성이 크고, 진정성 없이는 그걸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강의나 발표를 잘하고 싶다면 지경통과 전달 스킬로 진정성 가득한 열정을 발휘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똑똑한 사람’에 대한 기준도 바뀌고 있습니다. 지식을 많이 암기하는 것보다 무엇을 물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고, 답을 빨리 내는 것보단 그걸 검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IQ는 분명 중요한 능력이지만 사람과 협업하는 능력이 일의 성과에 더 영향을 미치고, 코딩을 잘하는 건 유리하지만, AI를 잘 활용하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박식함보다는 지적 능력이 먼저입니다. 결국 AI 시대의 ‘똑똑함’이란 단순히 많이 아는 게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고, 적절한 질문을 던지며, AI와 함께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학습하고 강화하는 과정에 열정이 더해지면 그게 AI 시대의 빛나는 강의이고 발표입니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폭넓게 학습하는 지침서가 될 만한 신간을 소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