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의 메시지 75

사회적 태만과 링겔만 효과
- 성과 보상체계의 개선이 필요한 이유 -



대학도 인간처럼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유기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기서 유기체란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는 존재라는 의미이고, 법적으로 인격이 부여된 법인(法人)이 자연인처럼 탄생과 성장, 성숙과 소멸의 삶을 거치듯 대학도 그 궤적을 따른다는 말입니다. 학령인구의 급감을 겪는 국내 대학들의 소멸과 통합을 보면, 대학의 영속은 희망일 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백 년 넘게 장수하는 대학들도 있지만, 지금은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존재의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 세상에서 대학의 명성은 지난 얘기일 뿐입니다. 이제는 조직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작동하느냐에 따라 생존과 발전이 결정되는 환경으로 변했습니다.

우리 근대사에서도 대학은 통합과 소멸이 끊임없는 변신과 진화의 과정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는 1946년 미군정 하의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에 따라 경성제국대학 등 9개 전문대학의 통합으로 재탄생했고, 고려대학교는 1905년 설립된 보성전문학교가 그 전신입니다. 연세대학교 역시 연희전문대학의 후신인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교의 합병으로 탄생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저출산으로 인해 정부 주도의 국립대학 간의 통합과 구조조정이 지금 한창이지만, 그 이전에도 성장과 발전을 위한 대학의 통합은 부단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동안 대학의 성격이 변화면서 ‘전문’ 혹은 특정 목적을 지닌 단어가 빠지면서 2010년 전후로 많은 대학이 교명을 바꾸었습니다. 큰 변화를 한꺼번에 겪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우리와 유사성 높은 국립한국교통대학교는 충주대학교와 철도대학교의 통합(2012)으로 탄생했지만, 최근 충북대학교와 통합되면서 소멸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과 교육제도의 변화가 근원이긴 하지만, 대학의 생존 전략이 담긴 지금의 ‘구조조정’은 미래의 교육수요를 낙관했던 몸집 키우기, 그리고 대학의 양적 위세와 규모의 경제에 대한 믿음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사립대들이 생존을 걸고 내놓는 고육지책은 더 절박합니다. 수도권이라고 해서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닙니다. 예상된 일이지만, 지방대들의 구조조정이 끝나면 위기는 곧장 수도권으로 번질 것입니다. 이미 2026학년도 정시모집에서는 서울지역 지원자 수가 전년보다 줄어든 반면, 대부분의 비수도권에선 크게 늘었고, 수시 지원자 또한 지난해보다 10% 이상 많은 10만여 명이 증가했습니다. 이처럼 ‘인-서울 대학’의 환상도 언젠가는 사라질 겁니다.

외형적 규모로 경쟁력을 키우는 시대가 저물고, 이젠 콘텐츠가 비교우위를 결정하는 환경으로 바뀌었습니다. ‘규모의 경제’가 더 이상 능사는 아니란 얘기입니다. 여기엔 흥미로운 실험이 있습니다. 1900년대 초 프랑스 농업 기술자였던 링겔만(Maximilien Ringelmann, 1861∼1931)은 수레를 끄는 말 두 마리의 힘이 한 마리가 끄는 능력의 2배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집단 내 개인의 공헌도 변화를 분석하기 위해 줄다리기 실험을 했습니다.
개인의 힘이 100이라고 가정했을 때 2명, 3명, 8명으로 이루어진 각 그룹은 200, 300, 800의 힘을 갖지만, 실제로 2명으로 이뤄진 그룹은 그 잠재력의 93%, 3명 그룹은 85%, 심지어 8명 그룹은 49%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구성원의 수가 늘어날수록 개인의 공헌도는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 이것이 바로 시너지 효과와 대비되는 ‘링겔만 효과(Ringelmann Effect)’입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태만이 익명성 뒤에 가려져 조직 전체의 생산성을 낮추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규모의 불경제’는 구성원의 동기부여 상실(motivation problem)과 조정의 실패(coordination problem)로 발생하는 조직화의 역기능입니다. 이는 개인과 사익보다 집단과 공익을 우선했던 사회주의 경제가 실패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기업마다 나태한 직원들의 ‘무임승차(free riding)’ 방지를 위해 목표관리(MBO)와 성과연봉제로 보상 체계를 강화하고, 강한 팀워크 구축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KAU의 혁신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거대한 학부의 벽을 허물고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전공자율선택제’로 학사 구조를 개편했습니다. 혁신 융합과 수요자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한 덕분에 캠퍼스는 점차 역동성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역대급 규모의 15개 대형 사업단이 유치되어 산학협력과 대학원이 활성화되었고, 무전공으로 입학한 신입생의 중도 탈락률은 6%대로 크게 하락했습니다. 꾸준히 우상향하는 재학생들의 교육 만족도와 함께 KAU의 인지도 상승도 서서히 체감하고 있습니다. 항공업계의 재편과 우주 시대의 본격적인 진입 또한 우리에겐 희망적입니다. 산업계가 요구하는 고급 인력 양성에 대한 수요와 기대도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산학 프로그램의 개발, AI 교육과 행정 시스템 정착, 그리고 구성원들의 잠재력 구현에 앞으로 조직의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대학 발전을 위한 개인 간 노력과 업적의 여전한 편차는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예컨대, 상위 20%의 교수님이 전체 외부 연구비의 82%를 수주하는 현재의 불균형한 구조에선 조직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기 어렵습니다. 투철한 직업윤리를 바탕으로, 교육과 연구에서 창출한 성과가 공정하게 평가받을 때 비로소 링겔만 효과를 극복하고 혁신과 융합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각고의 노력과 그에 따른 성과에 대한 보상 체계 개선에 교직원 여러분의 깊은 이해와 참여를 기대합니다. 다소 불편함이 뒤따르는 일이지만, 그래야만 조직이 유기적으로 작동합니다. 그 궁극적인 지향점은 전통 명문 KAU의 부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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