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의 메시지 71

느슨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사는 법



세상에 내노라하는 정치인, 기업인, 운동선수, 연예인들은 모두 행복한 사람들일 겁니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 정통한 이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들도 내심 불안하고, 뭔가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이들 중엔 할 일이 없으면 오히려 무력감이 든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우울증은 아니라도 만족스럽지 못한 감정이 늘 따라붙어 괴로움을 겪는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들도 모두 행복하고 기쁜 순간을 경험하지만, 순간은 순간일 뿐 원하는 만큼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런 순간보다는 유명세와 삶의 변덕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면, 그 많은 뉴스와 의미 없이 분주하기만 한 일들, 이메일과 SNS 알림, 그리고 ‘다음’에 대한 생각을 다 내려놓고 싶다고도 합니다. 겉으로는 행복한 듯해도 늘 좌불안석인 겁니다. 쉬지 않고 일을 붙잡고 있는 게 답은 아님을 알지만 일을 내려놓고 보면 어김없이 그래선 안 될 것 같다는 영웅주의가 문제입니다.

불교에는 아귀(餓鬼, hungry ghos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위장이 태산처럼 커서 아무리 먹어대도 배부른 걸 모르는 귀신입니다. 이 아귀의 모습에서 오늘날 많은 사람이 겪고 있는 심적 장애가 보입니다. 결과가 아무리 대단해도 아귀의 야망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과거보다 풍요로운 현대에 이르러 알코올 중독, 마약과 정신과 치료가 늘면서 약물과 알코올, 자살에 의한 사망자 수가 급증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심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늘 불안감을 느끼며 항상 급하고 쫓기는 것 같고, 일만 하며 살고 싶지는 않지만 그걸 멈추기 어려운 것, 이게 다 경쟁에 익숙한 우리에겐 성공을 좇는 삶의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두할수록 삶의 질은 달라집니다. 지금 눈앞에 놓인 대상에 온전히 집중할 때 몰입은 더 수월해집니다. 누구나 지금의 순간에 완전히 몰입할 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1988년생인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인 마이크 포즈너(Mike Posner)는 스무 살 되던 2008년, 듀크대학교 기숙사 방에서 <Cooler than Me>를 썼습니다. 그의 고향 디트로이트의 라디오 방송에서 자주 흘러나오던 이 노래는 2010년 5월 빌보드 핫 차트에서 2위에 올랐습니다. 부모의 걱정거리였던 그가 연이어 신곡들을 히트하면서 음반 계약이 뒤따랐습니다. 그는 유명인이 되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돈, 섹스, 마약, 큰 무대는 생각만큼 좋지 않았던 겁니다. 그사이 절친했던 친구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여자 친구와도 이별했습니다. 한참 지난 2019년 발표한 음반 <Real Good Kid>에는 그래서 아픔과 고통, 의문, 치유, 기쁨 등이 담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답답하고 쓸쓸했습니다. 끝없는 홍보 행사와 순회공연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들, 팝스타라서 겪는 그 피상적 관계에 염증이 났습니다. 돌파구가 필요했던 그는 두 발로 미국을 횡단할 생각을 했습니다. 갈증을 챙기고 오래 유지될 만족감을 느끼고 싶었던 겁니다. 2019년 4월 15일, 그는 뉴저지주 애즈버리파크(Asbury Park)에서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10월 18일, 종착지인 캘리포니아 베니스비치(Venice Beach)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4,600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그는 상상치 못한 일들을 겪었습니다. 콜로라도 동부에선 방울뱀에 물려 생사를 오가기도 했습니다. 걸을 만큼 몸이 회복되자 뱀에 불렸던 지점으로 돌아가 다시 걸었습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신이 행복과 성취에 관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전에는 삶에 목적지 골대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매일의 결정이 있을 뿐이었죠. 하루를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어디에 집중하고 힘과 관심을 쏟아야 할까? 이런 것에 답하다 보면 행복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횡단을 마친 후 그는 유튜브에 <Live Before I Die> 라는 영상을 올렸습니다. 영상의 중반에 “삶은 바로 지금 Life is NOW”라는 자막이 나옵니다. 포즈너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지금 순간에 펼쳐지는 삶을 살아 내기 위해서는 ‘여기 here’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횡단을 시작하며 그는 이렇게 되뇌었습니다. “내가 지금 누구인지 남에게 보여주려고 걷는 게 아니야. 내가 앞으로 누가 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걷는 거야.”



이보다 앞서 걸으면서 몰입의 행복감을 맛본 사람 중엔 베르나르 올리비에(Bernard Ollivier)도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간 프랑스 주요 일간지와 방송국에서 정치, 경제부 기자로 일하며 숨 가쁘게 살아온 그는 자기 삶에서 제 몫을 충분히 해냈지만, 퇴직한 후에도 여생을 편히 쉬면서 보내기를 거부했습니다. 1997년 그는 이스탄불과 중국의 시안(西安)을 잇는 신비의 실크로드를 1년에 3개월씩, 네 차례에 걸쳐 총 1만 2,000킬로미터를 걸었습니다. “이 부서지기 쉬운 순간은 나와 세상 사이에 화합이 자리 잡는 시간. 실크로드는 내게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데 적합한 곳으로 보였다.” 그의 기적이 담긴 책머리에 기록된 대목입니다.

26학번 신입생 여러분,
캠퍼스에서 맞이한 청춘의 봄날이 즐겁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지나온 시간과 노력에 대한 당연한 보상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새로운 걸 얻거나 달성하면 처음에는 행복감, 안녕감, 만족감이 올라가지만 몇 달 못가 그 수준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도착 오류(arrival fallacy)’입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탈 벤 샤하르(Tal Ben Shahar)가 영속적인 행복과 안녕감을 찾을 때 일반적으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언급한 말입니다. “사람들은 목표를 이루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 속에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건 잘못된 환상입니다.” 바라던 일을 이루고 마침내 원하는 지점에 도착하고 보면 행복하다는 느낌은 잠시일 뿐 오래가지 못하는 겁니다. 이를 행동과학적으론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고 합니다. 소득이 임계점을 넘으면 더 늘어나는 만큼 행복과 안녕감이 비례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이치와도 상통합니다. 쾌락이건 행복이건 단번에 얻는 것보다 과정의 경험과 의미에 집중할수록 적응 속도를 늦추고 행복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나 아닌 바깥에서 행복을 찾다가 실패하는 과정을 자꾸 반복하면 아예 희망을 잃게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 영웅주의가 좌절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든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행복은 현실에서 기대를 뺀 값이라고 합니다. 행복은 더 많은 것을 바라며 얻기 위해 애쓰는 게 아니라 이 순간 의미 있는 삶을 꾸리고 그 삶에 온전히 집중하는 가운데 누릴 수 있습니다. 지난 12년간의 부단한 노력으로 목적지에 도달한 우리 신입생들. 이제는 느슨하게, 그리고 단단한 삶을 위한 도전과 즐거운 몰입의 대상을 둘러볼 여유가 필요한 시간입니다. 넉넉히 사유하면서 읽어볼 만한 책을 소개합니다.

나는 단단하게 살기로 했다 | 브래드 스털버그 | 부키 - 예스24 나는 걷는다 세트 | 베르나르 올리비에 | 효형출판 – 예스24




[총장의 메시지_70] 진짜 승부는 대학에서 시작됩니다
[총장의 메시지_69] KAU의 서비스케이프 제안
[총장의 메시지_68] 강렬한 서비스 마무리, Finishing Touch!
[총장의 메시지_67] 우리 대학의 미래가 향하는 곳
[총장의 메시지_66] 대학마다 분위기가 다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