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도 누가 봐줘야 화가입니다. 작품을 쌓아놓기만 한다면 그냥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고, 아무리 글솜씨가 좋아도 독자가 있어야 작가입니다. 시장에는 늘 상품과 서비스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고객의 선택을 받는 건 그중 일부입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기업이 마케팅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입니다. 소비자의 시선을 잡기 위한 슬로건이나 이벤트, 광고의 오프닝 문구에 그들이 심혈을 기울이는 건 짧은 순간에 고객의 마음을 잡기 위함입니다. 전달되는 메시지는 첫 접점에서 명료하고 강렬할수록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사되는 첫 거래는 이익보다 시작이 목표입니다. 작은 것에서 시작해 더 큰 판매를 얻어내는 ‘한발 들어놓기 기법(foot-in-the-door technique)’입니다. 이 마케팅 기법은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 MOT)’에서 시작되고 끝이 납니다. 이 순간이란 고객이 회사나 제품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15초 내외의 짧은 순간을 일컫는 마케팅 용어. 현장에서 상품이나 직원과 마주하거나 광고나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로 고객이 접하는 그 순간들이 기업과 상품의 이미지를 결정합니다. 기업의 생존과 발전을 좌우하는 순간입니다. 이 용어는 1980년대 초 경영 위기에 처했던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항공(SAS)의 자문역을 맡았던 스페인의 경제학자 리처드 노먼(R. Norman)이 처음 사용했습니다. 고객이 구매 여부를 판단하는 짧은 순간을 마치 투우사가 투우와 맞서는 순간에 비유한 겁니다. 투우사가 칼을 투우의 급소에 꽂는 결정적 순간을 맞이하는 것처럼 기업과 고객은 누구나 이 순간들을 맞이합니다.

“SAS는 당신이다. 고객이 느끼는 모든 진실의 순간마다 당신이 곧 회사다.” 취임 후 1년 만에 기업문화를 확 바꿔 흑자 전환으로 서비스 혁명의 신화를 탄생시킨 SAS의 CEO 얀 칼슨(Jan Carlzon)의 말입니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평가받는 결정적 순간들은 언제나 넘쳐납니다. 단 한 번의 비행기 탑승에서도 승객은 수많은 MOT을 맞이합니다. 항공권을 예약하거나 취소할 때, 공항의 키오스크나 체크인카운터에서 직원을 마주할 때, 승무원의 탑승 인사를 받거나 좌석을 안내받을 때, 식·음료 서비스를 받을 때, 출발 지연의 기내 방송을 듣거나 좌석의 작동 방법을 물어볼 때처럼 수많은 접점에서 고객은 항공권의 가치에 담긴 진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순간들은 곧 하나의 패키지가 되어 시장에서 브랜드가치와 평판을 형성합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기업은 만족보다 불만에 더 민감해집니다. LCC의 성공 신화를 쌓은 사우스웨스트항공(SWA)은 일찍이 불만족한 고객의 영향력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불평하는 1명의 승객이 있다면, 거기엔 침묵하는 25명의 승객이 있다. 침묵하는 승객마다 평균 12명에게 불만을 전달하고, 침묵하는 승객 중 10%는 20명 이상에게 전달한다.” 1명의 불평 고객은 곧 300명의 불만족한 예비고객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당시 이 항공사에 전달된 불평 건수가 연간 6만 건 보고되었는데, 이는 적어도 150만 명의 불만 고객이 존재함을 뜻했습니다. 그 후 브리티시항공도 승객 불만을 조사한 결과, 8%만이 고객센터에 불만 사항을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불만족한 고객들은 쉽게 불평을 표출하지 않습니다. 그냥 침묵하는 편이 낫습니다. 불평은 비용이 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대와 경험이 일치하면 고객은 만족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의 불만으로 만족한 요인 모두 잃게 만들기도 합니다. 서비스에선 ‘100-1=99가 아닌 100-1=0’이 되는 이유입니다. 고객 불만의 심각성에 대한 표현이지만, 고객을 이탈시키는 악마는 이렇게 디테일에 있습니다.
교·직원, 재학생 여러분!
예나 지금이나 대학 간의 순위 경쟁은 치열합니다.
그 서열은 수험생과 학부모에겐 대학을 판단하는 지표가 됩니다. 합격권 점수의 순위와 대학의 진짜 가치가 꼭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우수한 학생을 확보하려는 대학으로선 사회적 평판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대학이 최근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를 강화하는 이유입니다. 그간 대학 홈페이지와 SNS 채널을 활성화하고, 내부고객인 재학생 대상으로 ‘고객의 소리(VOC)’를 듣는 건 바로 그곳이 진실들의 순간이 담긴 접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는 하루에도 수많은 진실의 순간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평소 행정부처와 학부·학과 사무실의 전화 문의와 응대, 전공 트랙을 소개하는 웹사이트, 언론에 비친 뉴스와 학생 동아리 활동들은 온·오프라인으로 캠퍼스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KAU에 담긴 ‘진실의 순간’을 드러냅니다.
지금은 대입 시즌입니다. 대학마다 수험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이 치열합니다. 이번에 우리 대학이 때맞춰 마련한 제1회 항공레저산업 일자리 박람회와 제2회 활주로축제를 전국적으로 홍보하고 관객을 모으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찾아온 시민과 학생들이 행사장에서 경험한 수많은 진실을 널리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그 경험의 순간들이 KAU의 평판을 형성하고, 방문에 만족한 초중고 학생들은 우리 대학의 잠재적 고객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KAU만의 값진 진실을 드러내는 순간을 각자의 위치에서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평판을 만드는 ‘진실의 순간들’입니다. “당신이 곧 KAU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