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의 메시지 60

비행기를 띄우는 역풍의 역설(逆說)


“서울이 지척인 대학가인데 동네가 왜 이래?” 몇 해 전 화전 거리를 취재했던 모 신문 기사의 제목입니다. 지금도 화전을 찾는 방문객의 변함없는 첫인상일 겁니다. 화전의 랜드마크로 ‘한국항공대역’이 새롭게 탄생했지만, 이 지역의 변화는 아직 뚜렷하지 않습니다. ‘쾌적한 대학로’를 만들기 위한 시내버스 노선변경 구상에 대한 일부 주민의 반발과 길거리 전봇대를 없앨 고양시의 예산 삭감으로 우리 대학과 지역민들이 꿈꿨던 ‘캠퍼스타운’의 조성은 답보상태입니다. 그냥 놔두기엔 이 지역의 풍부한 발전잠재력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대학은 그래서 지난 4월 주민 대표들과 TF를 구성하고 한국항공대역 인프라 개선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지난달에는 최근 입주가 끝난 대덕동 덕은지구 2만여 명의 주민 대표들도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옳은 방향이라도 변화에는 늘 걸림돌이 있게 마련입니다. 변화에 대한 반작용, 관성의 법칙입니다. 지금 익숙한 걸 바꾸는 건 귀찮은 일이고, 종전대로 하는 게 당장은 편해서 그렇습니다. 낡은 틀을 허물고 바꾸는 혁신은 그래서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항해에도 순풍만이 전부는 아니듯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일이 순조롭기만을 기대해선 안 됩니다. 배가 움직일 때도 순풍이 도움을 주는 건 일정한 속도가 붙을 때까지만입니다. 배와 바람의 상대속도로 결정되는 추진력이 배와 바람의 속도가 같아지면 순풍의 추진력은 더 이상의 힘이 되지 못합니다. 이때부터 속도를 높이려면 역풍(逆風)을 이용해야 합니다. 맞바람의 방향에 맞춰 적당히 돛의 각도를 틀어주면 강한 추진력이 얻는 원리입니다. 비행기도 이륙하기 위해서는 날개의 양력을 높여주는 역풍이 필요하고, 착륙할 때도 역풍을 받아야 지상의 활주 거리가 짧아집니다. 공항마다 이착륙 방향이 바뀌는 것도 풍향에 따라 역풍을 정면으로 맞기 위합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상황이 뒤집히는 걸 정치에서도 역풍이라고 합니다. 유리했던 분위기가 여론의 악화로 주도하는 측이 타격을 받는 역풍을 두려워하는 건 표심에 성패를 거는 그들만의 얘기입니다.

역풍은 순풍입니다. 이 역설(逆說)은 물리학의 세계에만 있지 않습니다. 개인의 삶에도 ‘순풍에 돛 단 듯이’ 일사천리로 내닫기보다는 역풍을 맞는 게 오히려 내성을 키워주고 세상 사는데 유리할 때가 많습니다. 파도는 인간관계의 바다에도 때론 거칠게 일어납니다. 우리는 맞바람이 일으키는 파도를 두려워하고 일단 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파도 없이 고요한 바다는 죽은 바다입니다. 우리 삶에서 늘 마주하는 개인 간 또는 조직 간의 갈등은 오히려 관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불꽃이 되기도 합니다. 이 갈등이 과도하면 그 불꽃이 뜨겁고 아프게 하지만, 그 열기는 우리의 단단한 껍질, 각자의 선입견을 녹여 더 깊은 이해와 성장으로 이끌어줍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가진 두 사람이 마주할 때, 그들의 갈등은 거친 파도에서 부딪치는 두 개의 바다와 같습니다. 처음엔 날카롭고 서로 깨뜨릴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부딪힘은 모서리를 부드럽게 다듬어 매끄럽게 만들어줍니다. 갈등은 그래서 우리 내면의 거울입니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진실을 비추고,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과 욕망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 거울을 두려워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용기 있게 마주해야 비로소 우리는 역풍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갈등과 역풍을 맞이하는 삶의 여정은 고통스럽고 불편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인생의 의미와 깊이를 더하는 인간적 경험입니다. 물과 불이 만나면 재앙이 될 수도 있지만, 증기가 되어 동력을 만들어내듯이 우리가 흔히 ‘독’이라고 여기는 역풍을 적절히 다루면 오히려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약’이 됩니다. 갈등이 만들어내는 역풍에 대한 부정적 편견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최근 조직심리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건전한 갈등을 경험한 팀은 그렇지 않은 팀보다 문제해결 능력이 최대 40%까지 향상되었고, 갈등을 적절히 관리하는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구성원들의 만족도와 충성도가 현저히 높고, 혁신지수 역시 평균보다 높았습니다.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갈등도 관리하기에 따라선 순풍이 되는 역풍의 역설(逆說)입니다.

CYCLE

No matter which direction you cycle, the wind is always in your face. ©Profimedia, Alamy

아인슈타인은 틈틈이 자전거 타기를 즐겼습니다. 탈 때마다 맞바람은 그를 힘들게 했습니다. 바람은 부는 방향이 분명하지만, 자전거 타는 사람에겐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맞바람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갈 때는 불어오는 맞바람이 올 때는 나아질 걸로 생각하지만, 돌아올 때도 맞바람. 여럿이 함께 타면 앞사람이 대신 맞을 것 같은 바람도 돌아서 나에게 오는 맞바람. 밖이 아니라 안에 있어도 맞바람은 온통 나한테로 옵니다. 여기엔 물리학 이론도 상관없이 자전거 타는 사람에겐 모두 맞바람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도 타면서 생각했겠지만, 상대성이론으로도 이걸 증명하지는 못했습니다. 재미로 소개하는 아인슈타인의 숨겨진 이야기, ‘역풍의 역설(The Headwind paradox: Einstein’s Forgotten Theory)’입니다. 스키점프와 비행의 원리처럼 이렇게 때로는 역풍이 순풍입니다. 요트도 속도를 내기에는 순풍보다 적당한 각도의 역풍이 좋습니다. 배의 전방 45도 정도에서 90도 옆으로 부는 역풍을 맞으면 돛의 각을 트는 것만으로 항로 변경 없이 계속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데, 속도가 빨라질수록 강한 바람을 맞아 앞으로 나아가는 힘도 점점 더 강해진다는 사실이 역설의 백미입니다.

인생에도 순풍이 불 때가 있는가 하면 역풍이 부는 때도 있습니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든 삶의 동력원으로 삼는다면, 그 자리에 멈춰 서거나 뒤로 물러나는 일 없이 때로는 순항하고 때로는 역동적으로 항해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게 정도(正道)입니다. 수십 년 동안 그린벨트와 각종 규제로 꽁꽁 묶인 우리 대학의 소재지인 화전을 변모시키기 위한 노력에도 당연히 맞바람은 심합니다. 그러나 끈기 있고 슬기롭게 각도를 틀어 맞선다면, 지금의 역풍은 어느 순간 순풍으로 바뀔 수 있고, 훼손되지 않은 주변의 녹지는 캠퍼스를 품은 자연으로 변할 겁니다. 그때쯤 우리 대학엔 창릉 신도시 개발과 함께 새로운 정문이 만들어지고, 전철역 주변은 쾌적한 캠퍼스타운으로 변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총장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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