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의 메시지 43

기업인이 존경받는 이유

기업은 법으로 인격(人格)이 부여된 생물입니다. 사람처럼 태어나서 성장하고 성숙기를 지나 쇠락하면 생을 마감합니다. 법인(法人)과 자연인(自然人)은 누가 더 오래 살까요? 인간은 100세 시대를 말하지만, 법인의 수명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컨설팅그룹 맥킨지에 따르면, 기업의 수명은 1975년에 30년이던 게 2000년대 들어 15년 이하로 줄었습니다. 2027년쯤엔 12년 정도로 예측합니다. 미국 S&P 500대 기업의 상장 기간도 1970년 평균 30년 정도이던 게 지금은 20년에도 못 미칩니다. 2000년 상장되어 있던 < 포춘 500대 기업 > 중 절반 이상이 지금 사라졌습니다. 사람의 수명은 늘지만, 기업의 수명은 줄고 있는 겁니다. 환경의 불확실성이 늘면서 그만큼 사업하는 게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사업을 책임지는 사람이 경영자입니다. 똑같은 자원을 갖고도 CEO의 역량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갈립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전자는 흥하는 기업이고 후자는 망하는 기업입니다. 두 회사 모두 보잉과 에어버스가 만든 항공기를 갖고 같은 시장에서 운송업을 했지만, 회사의 운명이 갈린 건 ‘경영’ 때문이었습니다. 중요한 대목마다 발휘되는 경영자의 역량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티웨이항공과 이스타항공도 마찬가지 경우. 비슷한 시기에 창업해 똑같은 항공운송업으로 성장했던 저비용항공사(LCC)지만, 전자는 흥하고 후자는 파산했습니다. 회생 중인 이스타항공엔 주인이 바뀌었고 많은 임직원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험한 바다일수록 선장이 중요하듯 기업은 CEO를 잘 만나야 합니다. 지금 잘 나가는 삼성전자는 어떨까요. 1969년 창업한 이 기업이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건 이제 20년쯤 됩니다. 최고의 기업이라도 나이는 많지 않습니다. 같은 해 창업해 동년배인 대한항공, 동원그룹도 55세에 불과합니다. 국내에서 백 살 넘는 장수기업이라면 1896년 ‘박승직상점’으로 창업해 지금 128살이 된 두산그룹 정도입니다. 산업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특히 장수기업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요? 사업주는 당장 영리가 목적이지만, 국가 경제적으로 더 중요한 이유는 시장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자본과 노동, 기술, 지식과 정보 등의 자원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이해관계자와 나누는 역할을 합니다. 경영의 세계에선 ‘1+1=2’가 답이 아닙니다. 투입물 1과 1이 더해져 5가 산출되는 게 좋습니다. 창출된 가치 ▲3이 바로 부가가치(value added)입니다. 인건비, 조세 공과금, 금융비용, 감가상각비, 임차료, 그리고 경상이익의 합계입니다. 다시 말해 종업원에게 주는 임금, 정부에 내는 세금, 은행 등에 내는 금융비용, 자산에 대한 임차료, 재투자를 위한 적립금, 그리고 주주에게 돌아가는 이익을 모두 합한 게 바로 부가가치입니다. 기업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이해관계자들에게 흘려보내는 ‘도관(conduit)’입니다. 자본가와 노동자를 구분하는 계급투쟁이념의 논리처럼 기업이 번 돈을 주주나 사업주가 혼자 챙기는 게 아닙니다. 반도체와 바이오, 신에너지와 항공우주 분야에 국가가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도 이들 업종의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입니다.


※ 자료출처: 허희영 외, 경영학원론(2021)

그러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란 무슨 의미일까요? UN 글로벌 콤팩트는 인권과 노동, 환경, 반부패 등 네 분야에 대한 책임으로 규정합니다. 이해관계자의 관점에서 보면, 주주와 직원, 고객, 협력업체, 지역사회와 정부에 대한 책임을 뜻합니다. 부가가치를 나눠 갖는 이해관계자그룹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적 ‘책임’에 대해선 상반된 견해가 존재합니다. 기업은 경제의 주체로서 주주는 물론 소비자와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을 위해 기업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기업활동으로 훼손된 환경과 자원문제에 대한 해결의 책무가 있다는 사회경제적 관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윤을 창출해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의 유일한 책임은 경제적 이윤을 내는 것’이라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튼 프리드만(Milton Friedman) 교수의 주장처럼 기업은 생존만으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어느 경우이건 CSR은 기업에 대한 사회적 기대입니다. 부의 양극화로 기업은 이제 단순히 영리 추구뿐 아니라 이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시대적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CSR 전담부서를 두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CSR을 당연한 걸로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자유시장경제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잘 나가는 기업도 앞날을 알 수 없으니 사업은 롤러코스터에 비유됩니다. 크건 작건 사업가는 돈 잘 버는 게 미덕입니다. 번 돈으로 세금 내고 일자리를 만들어 직원 월급 주는 게 CSR의 실천입니다. 기업인은 그래서 존경받아야 합니다. 최근 우리 학교에 귀한 손님들이 다녀갔습니다. 1987년 항공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혈혈단신 인도네시아로 떠나 최고의 사업가로 기적같이 성공한 이승세 동문이 37년 만에 가족과 함께 모교를 찾았습니다. 국내 인쇄업계의 신화로 자리매김한 투데이아트(주) 박장선 회장은 어려웠던 창업 시절 도움 준 경영학부 신동식 교수를 잊지 않고 학교를 찾았습니다. 창업으로 성공한 두 분의 기업인은 각각 10억 기부금을 납부하고 약정했습니다. 기부는 사회적 책임의 매우 특별한 경우입니다. 벌기 힘든 만큼 쓰는 일도 쉽지 않은데, 이 기업인들은 그걸 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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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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