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는 뉴노멀, 선택이 아니라 필수”.
많이 듣는 얘기입니다. 언제부턴가 산업계는 물론 공공기관에서도 익숙해진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용어. 기업에 투자할 때는 이 세 가지 요소를 보고 판단하자는 지침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수익성만 보지 말고 사회적·윤리적 가치에 충실한 기업에 먼저 투자해 주자는 취지입니다. 이게 제대로 된다면, 탐욕스러운 문제의 기업에는 투자업계의 큰돈이 흘러들지 않게 됩니다.
사실 ESG는 갑자기 뚝 떨어진 개념이 아닙니다. 인류가 당연히 해야 하고 또 추구해 온 가치입니다. 기후변화나 청정생산, 유해화학물질 관리 등의 환경문제(E), 인권이나 노동 및 산업안전, 공정거래 등의 사회문제(S), 주주권익이나 공정한 이사회 운영, 내부 감시제도 등의 지배구조 문제(G)는 공동체의 존속과 성공을 위해 꼭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이를 실천하도록 처음으로 국제적인 상도(商道)를 만든 건 UN이었습니다. “지속 가능한 투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에 참여해 달라.” 2004년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던 코피 아난(Kofi Annan)은 글로벌 금융회사에 글로벌콤팩트(UN Global Compact)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고, 20여 개 금융기관이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 ‘누가 이기는가(Who Cares Wins)’도 발간했습니다. 글로벌 연기금과 투자기업들이 여기에 속속 동참하면서 새로운 잣대로 기업을 평가하고 투자하는 새로운 룰이 만들어졌습니다. ‘ESG’라는 신조어는 이렇게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자본이 움직이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 셈입니다. 글로벌 ‘큰손’들은 이미 ESG 평가정보를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적극적인 건 환경 이슈에 민감한 유럽 국가들. 영국을 시작으로 스웨덴, 독일, 캐나다, 벨기에, 프랑스 등에서 연·기금을 대상으로 ESG 정보 공시의무 제도를 이미 도입했고, 이어 미국도 움직였습니다. 2006년 투자금융의 중심인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발표된 유엔의 책임투자원칙(PRI)에는 투자받은 기업의 책임 있는 투자 활동과 성과를 보고토록 하는 투자자의 의무가 담겼습니다.
국내에서도 ESG는 큰 관심사입니다. 이미 대기업들 대부분은 전담 부서나 위원회를 설치했거나 관련 조직을 확대 개편했습니다. 기업의 시각에선 우려와 기대가 엇갈립니다. ESG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시민단체나 노동계의 시각이 많이 반영돼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우려와 함께 반(反)기업 정서를 해소하고 신뢰받는 기업문화를 조성한다는 기대감도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은 각기 자체적으로 지침을 마련해 유럽은 올해부터, 미국은 2026년부터 순차적으로 의무화할 예정입니다. 우리 정부도 기업의 환경정보 관련 공시를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기로 했지만, 작년 10월 충분한 준비기간과 주요국의 ESG 공시 일정 등을 고려해 2026년 이후로 연기했습니다. 이 흐름대로라면 앞으로 투자를 받는 ‘착한 기업’의 가치는 오르고 투자에서 외면받는 기업의 가치는 하락하게 됩니다.
ESG가 지자체, 공공기관뿐 아니라 대학에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적으로 ESG 경영의 필요성이 커지는 만큼, 대학의 교육·행정에도 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입니다. 어쩌면 앞으로 대학평가에 ESG 요소가 반영될지도 모릅니다. 재정지원 사업 평가의 보완 요소로 ‘ESG 경영’이 고려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은 대학도 공공기관처럼 ESG 경영 문화 확산을 위해 대학 알리미에 ESG 경영 공시를 하고 이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구성원들의 이해도가 낮고, ESG의 기본취지에 꼭 들어맞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ESG경영원에서 내놓은 ‘대학 ESG 가이드라인 V1.0’에선 평가에 적용할 88개 항목까지 제시했습니다. 기업에 대한 투자의 지침을 ESG를 대학의 경영에 적용하는 게 무리이긴 하지만, 환경과 사회적 책임,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 등 보편적 가치를 평가한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습니다.
이 기회에 우리 대학의 ESG를 생각해 봅니다. 대략 본다면, 우리 대학은 환경 보호의 기준을 준수하는 점에선 다른 대학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각종 봉사활동의 실천으로 맺어진 지역사회와의 끈끈한 연대는 우리 대학의 강점이고, 투명한 대학 경영도 돋보일 겁니다.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 그리고 투명한 의사결정을 대학 경영의 철학으로 새롭게 인식하고, 지금처럼 꾸준히 실천한다면, 우리 대학으로선 ESG 평가가 어려울 건 없습니다.
이윤을 실현해야 생존하는 기업에 ‘착한 기업’의 조건을 추가한 ESG. 이게 앞으로 경영의 틀을 바꾸게 될지, 아니면 열풍처럼 지나갈 조류일지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분명한 건 더 나은 환경과 세상을 만드는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을 실천할 때 사회와 우호적 관계가 강화된다는 사실입니다. ESG의 실천은 비용이 당장 부담이지만 지금은 대세가 되었습니다. 지구 온난화, 부실한 사회 안전망, 독선적 의사결정.. 해묵은 과제들로 시작된 ESG는 이제 기업경영을 넘어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습니다. ESG 원칙은 투자와 사회공동체가 모두 추구해야 하는 가치로 공동체에 대한 연대와 책임, 신뢰를 기초로 하는 새로운 관계와 질서, 사회적 자본 형성을 촉진합니다. 한마디로 ESG 경영이란 환경 보호(E)에 충실하면서 투명한 경영(G)으로 사회적으로 좋은 평판(S)을 얻는 것입니다. 특히 학생과 교직원의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ESG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새로운 학교 환경에서 지속가능한 습관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에코백 사용, 대중교통 이용, 재활용, 에너지 절약 등 학교생활에서 ESG 실천할 수 있도록 대학 생활 안내서에 명시하는 것은 ESG 관심과 참여를 높이는 방법입니다. 이제는 우리 대학도 ESG가 가져온 환경의 변화를 이해하고, 하나씩 실천할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총장의 메시지>
-[총장의 메시지_35] 세상을 보는 창틀, 프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