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시험 잘 봤는데... 학점이 왜 이래?”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당연한 듯하지만, 생각할수록 의미 있는 말입니다. 진실보다는 자신만의 프레임에 갇힌 사고의 편견과 오류. 극심한 로마의 정치적 혼란을 끝낸 대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했던 말입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에서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몇 차례나 언급했듯 인간은 세상의 일을 사실과 다르게 자신의 관점에서만 인식하려는 편향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이나 명제를 먼저 정해놓고 이를 확인할 증거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는 속성 때문입니다. 사실을 벗어난 비논리적인 추론과 주관으로 잘못된 판단에 이르는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인 겁니다.


기원전 카이사르의 말은 현대 심리학에서 실증연구로 재탄생했습니다. 1999년 코넬 대학의 사회심리학 교수인 더닝(David Dunning)과 당시 대학원생이던 크루거(Justin Kruger)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개인 역량지표인 독해력과 자동차 운전, 체스와 테니스 등의 능력에 대한 가설을 놓고 이를 검증한 겁니다. 이들의 연구는 이렇게 요약됩니다. 능력 없는 사람일수록 스스로 능력을 과대평가합니다. 다른 사람의 진정한 능력은 알아보지 못합니다. 능력 부족으로 생긴 자신의 곤경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알고 나서야 비로소 부족함을 깨닫고 이를 인정합니다. 능력 없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된 결정으로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지만, 능력이 부족해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인지의 편향성이 바로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입니다. 무식할수록 용감해지는 이유입니다.



새로운 지식을 접한 초보자는 스스로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지식과 경험, 아는 게 많을수록 그 자신감은 줄어듭니다. 물론 전문성이 쌓이면서 자신감은 회복되지만, 초보자 수준까진 이르지 못합니다. 아는 게 적은 사람은 환영적 우월감으로 자신의 실력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반면, 아는 게 많은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스스로 과소평가하는 겁니다. 오히려 열등감을 느끼는 경향까지 보입니다. “능력 없는 사람의 착각은 자신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하는 반면, 능력 있는 사람의 착각은 다른 사람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인지 실험에 대한 크루거와 더닝, 그리고 심리학자들의 결론입니다.


앞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아는지를 알고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를 안다는 것을 제대로 판단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과 아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불안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게 지혜로운 사람의 태도라고 했습니다. 찰스 다윈은 무지(無知)가 지식보다 더 확신을 준다고 인간의 인지적 편향성을 비꼬기도 했습니다. 능력을 넘어선 자신감은 잘못된 의사결정을 낳고, 반복된 오류로 동료들의 의구심을 낳아 팀워크를 훼손하며, 종종 스스로 위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재학생 여러분!

나는 답안지를 잘 썼는데 왜 성적은 만족스럽지 않을까. 애써 작성한 리포트가 왜 C인지 궁금할 때가 있을 겁니다. 이럴 땐 교수님에 대한 불만에 앞서 내가 인지적 편향성에 노출된 건 아닌지 잠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최적의 정답인지 아닌지 모르고, 성적의 상대평가에서 함께 평가받는 학우의 능력을 잘못 판단해서 발생하는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고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빠지는 착각, 경험 부족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판단의 오류. 더닝-크루거 효과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는 체하거나 잘난 체하지 않고 겸손한 태도로 상대방을 대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존중을 표하는 겸양지덕(謙讓之德)과 같은 얘기입니다.

한 학기 동안 공부하느라 수고들 많았습니다.

여름방학을 시원하게 보낼 책 추천합니다. (끝)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총장메세지>

-[총장의 메시지_17] 화전을 확 바꿉시다.
-[총장의 메시지_16] 어렵게 배운 게 오래 갑니다.
-[총장의 메시지_15] 영웅이 많아야 대학의 문화가 바뀝니다.
-[총장의 메시지_14] 장교리더쉽의 재발견
-[총장의 메시지_13] "올해는 명문 대학 부할의 혁신 원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