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엔 늘 설렘과 흥분, 긴장감이 가득합니다. 뒤쪽에 늘어선 아마추어들의 표정도 똑같습니다. 총성과 함께 시작된 레이스. 동호인 단체들의 구호, 카메라를 향한 선수들의 환호성과 손짓은 마라톤 출발의 변함없는 모습입니다. 소란함은 곧 정적으로 바뀝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열은 더 길게 흩어집니다. 완주를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쳤던 동료들은 이제 옆에 없습니다. 레이스는 각자입니다. 목표에 맞춰 페이스를 조절하며 나아가는 정진의 시간. 반환점을 돌아오는 선두그룹이 나타납니다. 따르는 중계카메라와 사이드카가 화려합니다. 더딘 내 발길은 그러나 힘을 얻습니다. 그들의 표정에서 똑같은 고통을 봤기 때문입니다. 반환점을 돌아오는 길에 길게 마주하는 후미 그룹들. 거기서도 똑같은 치열함을 느낍니다. 마(魔)의 구간 35킬로. 프로나 아마추어나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시간입니다. 그만둘까 생각하는 순간 발은 뛰는 대신 걷는 쪽을 택합니다. 엘리트 그룹에도 포기자가 나오는 건 정신을 다잡지 못한 결과입니다. 결승선엔 고통의 감동이 넘칩니다. 프로이든 아마추어든 42.195Km 완주의 성취감은 각자의 몫입니다.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마라톤은 쉽지 않은 경기지만, 유독 마라톤을 인생(人生)에 비유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뛰는 사람은 거기에서 인생을 맛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는 태도가 전부이듯 출발하는 선수들의 복장, 체형, 표정에서 이미 ‘승부’는 정해집니다. 관광처럼 온 선수단의 요란한 구호는 도움 안 됩니다. 잘 찬 공이 골대 맞고 잘못 친 볼이 안타 되는 축구나 야구와는 다릅니다. 땀 흘린 만큼의 대가가 정확한 경기입니다. 레이스 중에는 기록이 비슷한 선수끼리 격려하고 경쟁하며 각자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앞선 사람 부러워할 것 없고, 뒤 쳐진 사람 동정할 것 없습니다. 각자 정한 목표가 전부입니다. 혼자서 하는 경기, 누구나 ‘마이웨이’입니다. 달리는 건 고독하지만 그래서 자유롭습니다. 내가 40대 나이에 미치도록 마라톤을 뛰었던 이유입니다.
I do my thing and you do your thing
I am not in this world to live up to your expectations,
And you are not in this world to live up to mine.
You are you, I am I.
And if by chance we find each other, it’s beautiful.
If not, it can’t be helped.
나는 나의 일을 하고, 너는 너의 일을 한다.
나는 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나의 기대에 따르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너, 나는 나.
만약 우연히 우리가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
만약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게슈탈트 기도문(Gestalt prayer)입니다. 타인과 공존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관계의 이치를 전하는 이 기도문은 독일계 정신과 의사로 미국의 심리학자였던 프리츠 펄스(Fritz Perls, 1893~1970)가 고안했습니다. 기도문은 각자의 개별성을 강조합니다. 이제부터 부모와 독립된 인격으로 살아갈 청년에겐 성숙한 삶의 방향입니다. 사람은 늘 자기가 아는 만큼 세상을 살아가며 각자의 역할과 기대에 충실히 할 뿐입니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한 삶을 살 필요 없고, 남에게 나를 위한 삶을 기대해서도 안 됩니다. 자신의 인생에 충실하고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카카오톡, 밴드와 인스타그램 같은 SNS 소통이 자유로운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와 연결된 ‘상시 접속’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고독’이나 ‘외톨이’ 같이 말을 부정적으로 느끼는 건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그래서 점심을 함께 먹을 친구 없는 스트레스로 ‘런치메이트 증후근’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사실 고독은 비참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게 더 문제입니다. SNS에 ‘좋아요’를 받아 인정의 욕구를 채우는 즐거움도 크지만, 이따금 자신과 대화하는 성찰(省察, introspect)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고 사고와 행동의 궤도를 수정해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고도의 지적인 작업입니다. AI가 보고 배운 지식을 쌓아 가면서 학습하는 딥러닝으로 진화하듯이 고독을 통한 성찰이란 스스로 정신을 발전시키는 ‘셀프 딥러닝’인 셈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을 사는 겁니다. 혼자가 되는 걸 즐겨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답게 살 수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도 언제나 나입니다. 혼자서 자신이 믿는 길을 걸어가는 초연함을 고독에서 오는 강인함, 이걸 고독력(孤獨力)이라고 합니다. 나는 왜 사람들 사이에서도 외로울까? 이 물음에 가볍게 읽어볼 만한 책들이 있어 소개합니다.
혼자서도 강한 사람 : 네이버 도서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네이버 도서
<총장의 메시지>
-[총장의 메시지_52] 인간 중심의 디지털 전환, 제5차 산업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