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를 점령하라!'. 2011년 9월 뉴욕 맨해튼의 시위는 당시 충격이었습니다. 국가의 부(富)를 독차지하는 1% 부자의 탐욕과 성공이 문제였습니다. 이와 대비된 99%의 절망과 가난을 표현했던 그들이 금융가에서 외친 구호는 순식간에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때마침 세상의 불공정성을 파헤친 하버드대학 마이크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2010)’, 심해진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역사적으로 분석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2013)’ 까지 선풍을 일으키면서 세상의 불공정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맞습니다. 세상은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습니다. 두 학자 역시 세상의 불공정성과 경제적 불평등을 심도 있게 규명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치곤 실제로 쓸만한 해법이 제시되진 못했습니다. 그냥 문제의 제기일 뿐이었습니다.
달라진 건 없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불평등은 계속됩니다. 불평등이 세상을 오히려 이롭게 한다는 걸 처음으로 주장한 학자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수학자이면서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 그는 자신의 정원에서 키우던 콩의 콩깍지 중에서 잘 여문 소수의 콩깍지가 전체 콩 산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발견하고, 이를 거시경제학으로 해석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20% 인구가 80%의 땅을 소유하는 사회경제적 현상을 정리해 1896년 논문으로 발표하면서 자원이 거시적으로 어떻게 배분되어야 경제 전체적으로 최적인가를 수학적으로 밝혔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파레토 최적’이란 누구에게도 손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이득을 증대시키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게 학계를 통해 알려지면서 상위 20%가 전체 생산의 80%를 해낸다는 경험의 법칙이 만들어졌습니다. 소위 80:20 법칙(80-20 Rule), ‘파레토의 원칙(Pareto principle)’입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익숙한 파레토 분포도 눈에 띄는 일부의 노력이 다수의 산출물을 담당한다는 걸 설명하는 데 이용됩니다.
우리는 ‘평등’이라는 용어의 매력에 쉽게 빠져들곤 합니다. 세상에 평등한 건 없습니다. 소수가 누리는 독점적 지위가 다수의 복지에 손해를 끼치는 것만 경계하면 됩니다. 마르크스나 사회주의 이념은 행복한 사회, 사회 전체의 복지(social welfare)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평등으로 그 목표가 달성되지 못합니다. 파레토 최적으로 그 이유가 쉽게 드러납니다.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부자의 감소한 복지에 비해 재산을 나눠 가진 다수의 복지가 더 늘어날까. 사회주의자들과 달리 파레토는 어느 한쪽의 복지가 더 늘어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관적인 만족도가 효용이고 복지인데, 부자의 감소한 효용과 빈자들의 증가한 효용을 비교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효용이론으로 본다면, 소수가 아주 많은 돈을 벌고 다수는 조금 벌거나 아예 못 번다고 해도 손해만 보지 않는다면 세상은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손해 보는 사람 없이 사회 전체의 효용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경험적으로 봐도 사회 전체의 복지는 늘 경제를 이끌어가는 소수가 담당합니다. 백화점 매출의 80%는 20%의 고객이 담당하고, 기업의 이익 중 80%는 20%의 주력 상품에서 나옵니다. 20%의 납세자가 국가 전체 세금의 80%를 담당하고, 20%의 스타가 연예계와 스포츠계 전체 소득의 80%를 쓸어 담습니다. 어느 시대이건 사회의 20% 주류가 이끌고 80%가 뒤를 따릅니다. 조직에선 순응하는 80%의 반대쪽엔 불평하는 20%가 존재합니다. 평등이 주는 매력은 크지만, 평등한 세상은 없습니다. 평등하게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 좋은 겁니다.
우리 학생들은 평등하게 주어진 기회 덕분에 한국항공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앞으로 중요한 건 여러분이 불평등한 세상에 나아가 20%의 주류가 되는 일입니다. 평범하게 사는 80%도 나쁘진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반대쪽의 비주류 20%가 되는 건 경계해야 합니다. 고단한 삶이 됩니다. 자본주의 불평등의 상징인 월가를 가진 미국은 살기가 팍팍하지만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경제지표의 모든 곡선이 우상향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반대입니다. 국민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의문입니다. 냉정한 미국은 불평등하게 가난을 방치해서 자립을 유도하지만, 각종 복지정책으로 온화한 유럽은 세금으로 온 국민의 허리가 휩니다. 그런 유럽이 지금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게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미국이 될 것인가, 유럽이 될 것인가? 똑같은 선진국 미국과 유럽의 초격차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설득력 있는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롭게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원리에는 불평등의 최적화 원리, 바로 파레토 법칙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방학 중 읽을 만한 책을 권합니다.
<총장의 메시지>
-[총장의 메시지_48] 길을 나서야 길을 찾습니다.